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작가의 섬세한 시선과 정확한 위로의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작가의 섬세한 시선과 정확한 위로의 소설집
현대 한국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권여선 작가가 4년 만에 선보인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은 출간 이후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2020년 2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 소설집은 제19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모르는 영역'을 포함해 총 8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권여선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문체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 고통받는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합니다.
이 글에서는 '아직 멀었다는 말'에 담긴 권여선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이 작품집이 한국문학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과 내면을 정확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모르는 영역'들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권여선과 '아직 멀었다는 말'의 탄생 배경
권여선은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한국문학의 질적 성장을 이끈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안녕 주정뱅이'로 제4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류문학'의 한 경지를 이룬 작가로, 그의 작품은 매번 발표될 때마다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안녕 주정뱅이' 이후 4년 만에 발표된 소설집으로, 권여선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술'이라는 소재를 자주 활용했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의도적으로 술을 배제하고 새로운 인물들과 상황을 탐색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의 시선이 더욱 확장되고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더욱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설집의 제목 '아직 멀었다는 말'은 어떤 목표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 아직 진행 중임을 암시합니다. 이는 작가가 바라보는, 완성되지 않은 세계와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전하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아직 멀었다는 말'에 담긴 8편의 이야기들
이 소설집에는 '모르는 영역', '손톱', '희박한 마음', '너머', '친구', '송추의 가을', '재', '전갱이의 맛' 등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권여선 특유의 시선과 문체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물들과 삶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모르는 영역'은 제19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아버지와 딸 사이의 세대 차이와 소통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두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르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단절된 소통과 관계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손톱'은 월급이 170만원도 되지 않는 스포츠매장 판매원으로 일하는 21살 소희의 이야기입니다. 엄마에게 한번, 언니에게 또 한번 버림받은 소희는 언니가 만든 빚을 갚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짬뽕 값조차 아끼며 살아가는 소희의 모습을 통해 권여선은 비정규직 청년들의 현실과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너머'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불안을 담고 있습니다. 아픈 어머니의 간병비 때문에 불공정함도 참고 견뎌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희박한 마음'에서는 레즈비언 할머니 커플 '데런'과 '디엔'의 이야기를, '전갱이의 맛'에서는 성대 낭종 수술을 받고 말의 의미를 되새기는 남성의 내면을 그려내는 등, 권여선은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층적인 모습을 포착합니다.
소외된 이들을 향한 정확한 공감과 위로
'아직 멀었다는 말'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정확한 공감입니다. 권여선은 비정규직 노동자, 간병인, 기간제 교사,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과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단순히 피해자나 약자로 그리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과 맞서 싸우며 자신만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주체로 그려냅니다.
특히 작가는 이들의 감정과 상황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포착해냅니다. 이는 소설가 김애란이 이 소설집의 추천사에서 언급한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라는 말처럼, 권여선 소설만의 독특한 위로 방식입니다. 아픔과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냉정하게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권여선은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파악합니다. 빈곤, 차별, 불평등 등의 문제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위협받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모르는 영역'을 향한 용기 있는 시선
'아직 멀었다는 말'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바로 '모르는 영역'에 대한 탐색입니다. 이는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동명의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이기도 합니다. 권여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알려고 하지 않는 영역들을 향해 용기 있게 시선을 돌립니다.
이러한 '모르는 영역'은 다양한 차원에서 나타납니다. 세대 간의 단절과 소통 불가능성, 타인의 내면과 감정에 대한 무지,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대한 무관심,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이해 부족까지. 작가는 이러한 '모르는 영역'을 직시하고, 그 속에 담긴 진실과 아픔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새로운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특히 '모르는 영역' 속 명덕이 생각하는 "딸은 도무지 좋게좋게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왜 해도 됩니까, 한 번은?' 다영의 이 날 선 질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은 이런 '모르는 영역'을 향한 작가의 탐색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권여선은 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혹은 알려고 하지 않는 영역들을 향해 한 발 내딛을 것을 권유합니다.
권여선의 문체와 서사 전략
'아직 멀었다는 말'에서 돋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권여선 특유의 섬세하고 정확한 문체입니다. 작가는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표현 대신, 절제되고 담백한 문장으로 인물들의 내면과 상황을 정확하게 포착해냅니다. 이러한 문체는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정확함'을 통한 위로의 방식을 문장 차원에서도 구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권여선은 이 소설집에서 다양한 서사 전략을 활용합니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자유롭게 오가며 인물들의 내면과 상황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시간의 흐름을 비선형적으로 구성하여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복잡한 인간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서사 전략은 독자들이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하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특히 작가는 일상적인 디테일과 소소한 장면들을 통해 인물들의 삶과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손톱'에서 소희가 짬뽕 값을 아끼며 퇴근길을 걷는 장면, '너머'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의 병실에서 간병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 등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와 인간적 감정을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단면과 소통의 가능성
'아직 멀었다는 말'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현대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현실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환경, 세대 간 소통의 단절, 가족 관계의 붕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인물들의 일상과 내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권여선은 이러한 문제들을 단순히 비판하거나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도 가능한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모르는 영역'을 향해 한 발 내딛고, 타인의 아픔과 감정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과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찾아냅니다.
특히 '전갱이의 맛'에서 성대 수술을 받은 주인공이 말에 대해 성찰하는 장면은 이러한 소통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말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인공의 깨달음은, 진정한 소통이 자기 자신과의 정직한 대화에서 시작됨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권여선은 단절된 관계와 소통 불가능성 속에서도 새로운 관계와 소통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합니다.
한국문학에서 '아직 멀었다는 말'의 의미
'아직 멀었다는 말'은 현대 한국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집은 우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대의 시선을 보여줌으로써,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권여선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진정한 문학적 연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소설집은 한국문학의 문체적, 서사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권여선 특유의 절제되고 정확한 문체, 비선형적 서사 구조, 다양한 시점의 활용 등은 한국 단편소설의 표현 방식과 가능성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일상적 디테일과 소소한 장면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사회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가의 역량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성취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위로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권여선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위안이나 감상적 공감이 아닌, '정확함'을 통한 위로를 전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우리가 모르는 영역들을 향해 용기 있게 시선을 돌리며, 그 속에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과정이야말로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위로임을 보여줍니다.
독자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용기
'아직 멀었다는 말'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 소설집이 전하는 독특한 위로와 용기 때문입니다. 권여선은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미화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봄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이는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김애란 작가의 추천사처럼, 정확함을 통한, 정직함을 통한 위로입니다.
또한 이 소설집은 독자들에게 '모르는 영역'을 향해 한 발 내딛을 용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타인의 감정과 상황,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권합니다. 이러한 용기는 단순히 현실을 직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권여선의 소설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감정들에 대해 "굳이 색을 칠해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정확함으로 묘사하는 슬픔의 풍경들이 선명해서 오히려 위로가 된다"는 평처럼, 독자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와 시선을 제공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아직 멀었다는 말'이 전하는 가장 큰 위로이자 용기일 것입니다.
마무리: 아직 멀었지만 함께 가는 길
권여선의 '아직 멀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것을 권합니다. 소설집의 제목처럼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과 목표는 '아직 멀었'지만,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일깨웁니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고난과 맞서 싸우며, 자신만의 존엄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170만원의 월급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소희, 기간제 교사로서 불공정함을 견디는 주인공, 성대 수술 후 말의 의미를 되새기는 남성 등 모두가 '아직 멀었다'는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권여선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고통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지, 그런 고통을 있게 한 전제와 맥락, 윤리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작점입니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그래서 단순한 소설집이 아닌,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깊은 질문이자 따뜻한 위로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영역들을 향해 용기 있게 시선을 돌리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함께 걸어가는 그 여정이 비록 '아직 멀었'지만, 그 길을 함께 걷는 것 자체가 희망임을 일깨우는 소중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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